라이프치히국제도서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
    마라톤 페이스 전략이 후반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하는 이유
  • 이지파 
  • 10-03 
  • 2 


    마라톤에서 초반에 여유를 두고 달려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들리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그만큼 자주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러너가 초반 오버페이스를 '의욕'이나 '근성'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사이, 실제로는 에너지 대사와 체온 조절, 신경 피로가 겹쳐 후반을 무너뜨리는 구조가 있다. 페이스 전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계산하는 문제다.

     

    초반 질주가 후반을 무너뜨리는 통념과 조건

    가장 널리 퍼진 통념은 '초반에 벌어 두면 후반에 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km 지점까지 앞서 나가면 남은 구간을 여유롭게 갈 수 있다고 믿는 경우인데, 실제로는 앞서 나간 만큼 산소 부채와 근 피로가 누적되어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초반 이득은 후반의 손실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원칙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코스가 완만하고 기온이 낮으며 본인의 지구력 기반이 두터운 조건이라면 초반에 다소 앞서 나가도 후반 유지가 가능하다. 반대로 더위와 오르막이 겹치는 날에는 같은 판단이 곧바로 역효과로 바뀐다. 결국 따져야 할 것은 '얼마나 앞서 나갔는가'가 아니라 '그 속도가 내 대사 비용을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 두는가'다. 참고: 자세한 내용

     

    페이스와 심박이 재는 것, 그리고 착시

    페이스는 단위 시간당 이동 거리를 재는 지표이고, 심박은 그 이동을 위해 심혈관이 얼마나 동원됐는지를 보여 준다. 문제는 두 지표가 서로 다른 시점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반 몇 킬로에서 페이스는 목표대로 나오는데 심박이 서서히 밀려 올라가는 상황이라면,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이미 비용을 초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추운 날에는 심박이 잘 오르지 않아 실제보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그래서 페이스 하나만 보거나 심박 하나만 보는 방식은 각각 다른 함정을 만든다. 자각 강도(RPE, 스스로 느끼는 힘든 정도)와 호흡 리듬을 함께 봐야 하며, 이 세 가지가 어긋날 때가 가장 위험한 신호다. 보완 지표는 '지금 얼마나 힘든가'가 아니라 '이 강도가 후반까지 유지 가능한가'를 묻는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환경 변수가 바꾸는 전략 선택

    기온과 습도, 코스 경사, 바람은 같은 페이스의 실제 비용을 바꾼다. 예를 들어 기온이 높고 습도가 같이 높은 날에는 땀 증발 효율이 떨어져 체온 조절 비용이 커지고, 같은 속도를 내도 심혈관 부담이 더 크다. 이때는 목표 페이스를 낮추는 것보다 급수 지점 활용과 초반 페이스 자체를 보수적으로 잡는 쪽이 효과적이다. 오르막이 반복되는 코스라면 업힐에서 속도를 억지로 유지하기보다 내리막에서 회복하는 리듬 설계가 유리하고, 맞바람 구간에서는 무리하게 자세를 낮추기보다 보폭을 줄여 케이던스(단위 시간당 발 디딤 수)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 반대로 기온이 낮고 코스가 평탄하며 바람이 잠잠한 날에는 계획한 페이스를 그대로 밀어붙이는 선택이 통할 수 있다. 장비 선택도 여기서 갈린다. 가벼운 신발은 추진 효율을 높이지만 지지와 완충을 줄여 후반 피로를 키울 수 있어, 코스와 기온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달라진다. 참고: WMM 공식 사이트

     

    반복 충격이 만드는 부담과 회복 원칙

    마라톤은 한 번의 강한 동작보다 같은 동작을 오래 반복하는 종목이다. 착지 순간마다 하지로 전달되는 충격이 누적되고, 피로가 쌓이면 착지 자세가 무너지면서 특정 부위에 하중이 몰린다. 이때 무릎 바깥쪽이나 정강이, 아킬레스건 주변에 부담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부담이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순간부터 서서히 쌓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후반에 보폭이 커지고 상체가 흔들리면 착지 충격이 커져 같은 거리를 달려도 비용이 달라진다. 선수들이 쓰는 예방 원칙은 대체로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훈련에서 페이스 변화에 몸이 적응하도록 다양한 강도를 섞는다. 둘째, 근력과 코어 안정성을 함께 길러 자세가 무너지는 시점을 늦춘다. 셋째, 회복을 훈련의 일부로 넣어 부담이 쌓이는 속도보다 회복 속도를 앞서게 한다. 치료나 진단의 문제가 아니라 부담 관리의 문제다.

     

    작동 원리와 효과가 나는 조건

    마라톤 페이스 전략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초반에 덜 쓰고 후반에 더 쓰는 방식으로 에너지와 체온, 신경 피로를 분배하는 것이다. 효과가 나는 조건은 명확하다. 본인의 지구력 기반이 목표 페이스를 후반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코스와 기온이 그 계획을 허용해야 하며, 급수와 영양 보급이 계획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 조건이 어긋나면 보수적 페이스는 오히려 기록 손실로만 남는다. 상대의 대응책도 존재한다. 경쟁자가 후반에 승부를 걸어 나오면 초반을 아낀 쪽은 그 시점에 맞서 속도를 올려야 하고, 그 순간 쌓아 둔 여유를 다 쓰게 된다. 반대로 초반에 앞서 나간 쪽은 후반에 버티지 못하면 앞선 이득을 전부 반납한다. 어느 선택이든 대가는 따라온다. 초반을 아끼면 후반 승부에서 밀릴 위험을 안고, 초반을 쓰면 후반 유지 실패 위험을 안는다. 그래서 전략은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내 조건에서 어느 대가를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정리된다.